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언올닷컴 블로그의 새 필진 이규화라고 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말레이 · 폴리네시아어파 미크로네시아어군에 속하는 마셜 제도의 공용어, 마셜어의 음운론을 소재로 한 이번 KLO의 2번 문제를 풀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 언어 정보 파악하기
이 문제는 마셜어 단어의 표기와 그 발음 사이의 규칙을 찾는 문제입니다. 두 부분으로 자료가 분리되어 있고, 전반부에는 일반적인 마셜어에 관한 자료가, 후반부에는 마셜어의 방언차에 관한 자료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주석이 상당히 긴데, 마셜어에 관한 내용, 표기법에 관한 내용, 발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기호인 국제음성기호(IPA)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 발음 기호가 등장하는 만큼, 이 주석을 잘 이용해야 할 듯합니다.
전반부 해결하기
정서법/철자법/표기와 발음 사이의 규칙을 찾는 문제는 표기와 발음을 적는 데 사용한 각각의 기호 사이 단순 대응 관계뿐만 아니라 특정 기호들만 가지는 성질이나 특정 기호들이 연이어질 때 나타나는 변화 역시 파악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단어를 적는 데 사용한 기호를 ‘표기 기호’, 발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기호를 ‘발음 기호’라고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유형의 문제도 여느 언올 문제가 그렇듯이 직관적인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직관적인 부분’은 물론 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료를 훑어보았을 때 표기 기호 수는 적은데 발음 기호 수는 훨씬 많은 모음보다는 자음 쪽이 분석하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자음 분석하기
자료를 조금 더 자세히 읽어 보면, 자음의 표기 기호와 발음 기호는 주석에서 언급한 ‘자음자 오른쪽 위의 부호’까지 포함하여 일대일대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표를 그려보겠습니다.
표기 | 발음 | 표기 | 발음 | 표기 | 발 |
n | [nj] | N | [nɣ] | N’ | [nw] |
m | [mj] | M | [mɣ] | M’ | [mw] |
l | [lj] | L | [lɣ] | L’ | [lw] |
g | [ŋ] | g’ | [ŋw] | ||
j | [tj] | t | [tɣ] | ||
p | [pj] | b | [pɣ] | ||
k | [k] | k’ | [kw] | ||
d | [rj] | r | [rɣ] | r’ | [rw] |
표기와 발음이 일대일대응되는 데다가 [□ɣ], [ŋ], [k]의 표기 기호에 ‘를 연이어 쓰면 [□w]이 된다는 규칙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ŋ], [k]는 [□ɣ]과 같은 꼴로 나타내지 않지만 그렇게 나타내는 발음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모음 분석하기
이어서, 모음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모음을 표기하는 데 사용한 기호는 단 4개인 데 반해, 모음의 발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기호는 12개입니다. 표기와 발음의 대응 관계를 표로 나타내 봅시다.
표기 | 발음 |
a | [a], [ɛ] |
e | [e], [o] |
E | [ʊ], [ɤ], [ɪ] |
i | [ɯ], [i], [u] |
불명 | [ʌ], [ɔ] |
자료에서 각각의 표기 기호는 그에 해당하는 발음 기호 한 개 또는 두 개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발음 기호가 언제 나타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제 한 개의 기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연이어진 기호를 볼 때가 왔습니다. 모음의 발음 기호와 인전합 자음의 발음 기호를 관찰하면 자음 기호 오른쪽 위의 부호에 따라 모음 기호를 분류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표로 나타내 봅시다.
표기 | [□j]와 인접 | [□ɣ]와 인접 | [□w]와 인접 |
a | [ɛ] | [a] | |
e | [e] | [o] | |
E | [ɪ] | [ɤ] | [ʊ] |
i | [i] | [ɯ] | [u] |
불명 | [ʌ] | [ɔ] |
모음 표기 체계의 윤곽이 보입니다. 표의 빈자리를 채우면 [ʌ], [ɔ]의 표기 기호는 각각 e, a가 됩니다. 게다가, 주석을 다시 읽어 보면 표기 기호가 같은 모음끼리는 입이 벌어지는 정도가 대략 비슷하고, [□j], [□ɣ], [□w]와 인접하는 모음은 각각 혀가 입안의 앞쪽에 자리하며 입술이 모아지지 않는 모음(전설 비원순 모음), 혀가 입안의 뒤쪽에 자리하며 입술이 모아지지 않는 모음(후설 비원순 모음), 혀가 입안의 뒤쪽에 자리하며 입술이 모아지는 모음(후설 원순 모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 것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체계인지 파악한 듯하니, 찾아낸 규칙을 정리하고 자료의 빈칸을 채울 때입니다.
전반부 규칙 정리하기 + 과제 해결하기
자료에서 알아낸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음은 표기와 발음이 일대일대응하며, 발음 기호의 오른쪽 위의 부호에 따라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ŋ], [k]는 [□ɣ]와 같은 종류로 간주한다.
- 모음은 입이 벌어지는 정도가 작은 것부터 i, E, e, a로 표기하며, 그 발음은 인접한 자음의 종류에 따라 전설 비원순, 후설 비원순, 후설 원순 중 하나로 결정된다. 이때, 모음의 전후에 인접한 자음의 종류가 다르다면 그 두 종류에 해당하는 발음이 연이어진다.
그렇다면, (ㄱ)~(ㄹ)은 각각 Nek’, [kwoetj], r’ag’, [kɯilj]이 됩니다.
후반부 해결하기
하지만, 이 문제는 자료를 하나 더 남겨 두고 있습니다. 마셜어의 두 방언에서 같은 단어의 발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역시 분석해 보겠습니다.
자료에서 다루는 단어는 전부 표기의 첫 두 기호가 같은 자음의 반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음의 뒷부분은 두 방언에서 같으며, 전반부에서 찾은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자음의 반복에 해당하는 앞부분에 주목해 보도록 합시다.
랠릭 방언 분석하기
우선 랠릭 방언 자료에서는 단어 앞에 특정한 모음 나열이 삽입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모음은 [□j]에 인접하는 모음, 즉 전설 비원순 모음으로 나타나고, 두 번째 모음은 뒤에 이어지는 자음과 인접하는 종류의 모음입니다. 그렇다면 입을 벌리는 정도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대체로 표기된 모음과 같지만, MMan과 kkag, 그리고 랠릭 방언의 발음만 주어진 [eokwkwɔalɣ]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앞부분에 삽입되는 모음은 표기된 모음과 같으나, 예외적으로 표기된 모음이 a이면 단어 앞에 삽입되는 모음은 e라는 규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라닥 방언 분석하기
이어서, 라닥 방언 자료에서는 단어 처음에 나타나는 두 자음 사이에 모음이 삽입되고 일부 경우 두 번째 자음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삽입되는 모음은 랠릭 방언과 같은 규칙을 따릅니다. 기본적으로는 표기된 모음과 같은 모음이 삽입되지만 표기된 모음이 a인 경우에는 e가 삽입됩니다. 또한, bbej과 kkag, 그리고 라닥 방언의 발음만 주어진 [tɣɤdɣɤrɣ]는 두 번째 자음이 변화한 것이 보이는데, 이 단어들의 첫 자음인 [p], [t], [k]는 공통적으로 주석에서 언급한 ‘성대가 떨리지 않는 자음’, 즉 무성음입니다. 그리고, 변화한 자음인 [b], [d], [g]는 ‘성대가 떨리는 자음’, 또는 유성음이라는 것에서 표기상으로 성대가 떨리지 않는 자음이 반복되면 두 번째 자음은 성대가 떨리는 자음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후반부 자료를 통해서 찾은 규칙도 정리하고 남은 과제를 해결해 봅시다.
후반부 규칙 정리하기 + 과제 해결하기
자료에서 알아낸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단어가 같은 자음의 반복으로 시작하면 랠릭 방언에서는 음절의 첫 모음을 반복되는 자음의 앞에 삽입하고, 이때 단어의 앞에 [□j]가 있는 것처럼 발음한다. 즉, 전설 비원순 모음을 단어의 처음에 삽입한다.
- 같은 조건에서 라닥 방언에서는 음절의 첫 모음을 반복되는 자음의 사이에 삽입하고, 이때 모음 사이에 무성음이 놓이면 그 자음은 유성음이 된다.
- 단, 음절의 첫 모음이 a인 경우에는 e를 삽입한다.
그렇다면, (ㅁ)~(ㅊ)은 각각 k’k’aL, [kwogwɔalɣ], [epjpjɛatɣ], [pjebjɛatɣ], ttEr, [ɪɤtɣɤtɣɤrɣ]입니다.
마치며
이로써 마셜어 문제의 풀이가 완성되었습니다. 특이한 음운 체계가 두드러지는 문제였는데, 평상시에 음성학과 음운론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면 훨씬 더 수월하게 푸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셜어와 같이 모음 음소를 단지 입을 벌리는 정도, 또는 혀의 높이에 의해서만 변별하는 음운 체계를 ‘수직 모음 체계’라고 합니다. 캅카스 산맥 인근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언어에서 수직 모음 체계를 찾아볼 수 있으나, 마셜어와 같이 4개의 모음을 가진 수직 모음 체계는 몹시 흔치 않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KLO 2024/25 #2 마셜어 문제의 풀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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