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문제의 구성과 해결 순서에 따라, IOL 2005년도 개인전 2번 문제인 랑고어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문제 정보 파악하기
이 문제는 랑고어의 의미 조합법을 묻는 문제입니다.
☞ 어휘 의미론 문제는 거의 항상 데이터가 순서 없이 제시되기 때문에 통상적인 문제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요합니다. 미지의 데이터와 한국어 번역을 각각 가능한 만큼 최대한 분석해 놓고, 각 요소의 결합 관계와 등장 횟수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또한 분석 자체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같은 의미도 언어와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요소들을 조합하여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풀이가 전적으로 창의적인 사고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 영역에 비해 형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이니만큼, 미지의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기준으로 추론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보통 이 유형의 문제들은 의미 자체의 합성과 파생에 대한 규칙을 설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언어 정보 파악하기
먼저, ɲ 와 ŋ 가 자음, ɔ 와 ɛ 가 모음이고, 모음자 위에 쓰인 부호 ´와 `는 성조를 표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데이터를 훑어 보았을 때 자음이나 모음 혹은 성조 하나를 가지고 구별되는 단어들은 없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정보들이 문제 풀이에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성적 사항이 문제 풀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적어도 답안 작성 시에 n/ɲ/ŋ, o/ɔ, e/ɛ 등을 혼동하여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앞서 한 가지 의미를 언어나 문화마다 서로 다른 의미 요소들의 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어휘 의미론 문제에서는 사용 지역 및 문화권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랑고어는 동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사용되는 언어입니다. (우간다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라는 것을 모르더라도 동’수단’어족 ‘나일’어파에 속한다는 추가 단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한국어 화자의 시각을 잠시 내려놓고, 문제를 동아프리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좋습니다.
한국어 번역 분석하기
다른 번역 문제도 그렇지만 어휘 의미론 문제의 경우 특히 주어진 데이터의 양이 많지 않으므로, 문제 본문뿐 아니라 소문항에서 제시하는 번역들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부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문항에 나온 번역과 데이터는 기울임체로 표시하겠습니다.)
- 눈알
- (한) 알
- 지붕
- 옷
- 방바닥
- 음식점
- 발바닥
- 모자
- 창문
의미를 어디서부터 분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큰 범주에 따라 나눠 봅시다. 건물이나 그 일부(‘지붕’, ‘방바닥’, ‘음식점’, ‘창문’), 신체 부위(‘눈알’, ‘발바닥’), 의복(‘옷’, ‘모자’) 그리고 분류하기 애매한 ‘(한) 알’이 있습니다. 유의할 점은 한국어 번역상에서 나타나는 유사성만을 가지고 분석을 미리 끝내 놓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각각 어떤 단어나 어구에 해당하는 번역인지를 알 수 없기에, 미지의 언어 데이터 분석과 연계하여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한국어식 의미 조합법만 기준으로 삼으면 미지의 언어에서 특정 개념을 분할하는 방식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미지의 데이터 분석하기
한국어 번역과 마찬가지로 소문항에서 제시하는 데이터까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 dyè
- dyè ɔ̀t
- dyè tyɛ̀n
- gìn
- gìn wìc
- ɲíg
- ɲíg wàŋ
- cɛ̀m
- ɔ̀t cɛ̀m
- wìc ɔ̀t
모두 한 단어, 또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어구들입니다. 모든 단어가 1) 단독으로 쓰일 때와 2) 어구의 첫 번째 요소 또는 3) 두 번째 요소로 쓰이는 각각의 경우에 형태가 변화하지 않으므로, 수식 관계는 어순을 통해서만 나타난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매번 베껴 쓰기 번거로운 특수 기호와 성조 부호를 무시하고 풀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답안을 쓸 때는 다시 철자를 확인하고 정확하게 써야겠지만요. 따라서 아래 기준에 따라 주어진 데이터를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 ɲ/ŋ 를 n 로, ɔ 를 o 로, ɛ 를 e 로 대체하여 쓰고, 성조 부호는 적지 않는다.
(단, 어디까지나 풀이 과정상의 편의를 위해서!) - 한 어구 안에 함께 나타나는 두 단어의 관계를 (첫 번째 단어) → (두 번째 단어)와 같이 화살표로 나타낸다.
- 각 단어 옆에 등장 빈도를 괄호 안에 적는다.
-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단어는 밑줄로 표시한다.
이때 3번과 4번은 데이터와 번역 간에 짝을 찾는 데 활용되므로, 소문항에서 제시된 경우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서는 데이터가 그렇게 많고 복잡하지 않아서 굳이 빈도를 따로 적어 줄 필요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문제가 조금만 복잡해져도 각 요소가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를 매번 다시 파악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므로 빈도를 적어주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데이터가 한층 명료해졌습니다. 위 도식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기할 점이 있습니다.
- ot 이 단독으로 쓰이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단어들(3개)과 결합한다.
- nig 와 wan 이 나머지 단어들과는 관계가 없고, nig 와 nig wan 으로만 나타난다.
이렇게 ‘가장 빈번한 요소’와 ‘가장 드문 요소’를 양 끝점으로 잡고 거기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우선 1번 사실은 앞서 한국어 번역을 대강 분석했을 때 ‘건물이나 그 일부’ 범주에 해당하는 의미가 4개로 가장 많았다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4개 중 하나는 소문항에 나온 ‘창문’이므로 제외하면, ot 이 ‘건물’이나 ‘집’에 해당하는 요소임이 확실해집니다. 이제 이 범주에 해당하는 ‘지붕’, ‘방바닥’, ‘음식점’의 의미 구조를 생각해 봅시다.
- ‘지붕’과 ‘방바닥’은 건물의 구성요소이므로 ‘집의 X’
- ‘음식점’은 특정한 건물이므로 ‘Y의 집’
이와 같은 꼴로 표현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ot 이 들어가는 어구 중 ot 이 뒤에 오는 두 개가 1번 유형, 앞에 오는 하나가 2번 유형이 되겠습니다. ot cem 이 ‘음식점’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함께 어순 규칙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 X Y = ‘Y의 X’ (X, Y는 명사)
한국어는 수식어modifier가 항상 핵어head 앞에 오기 때문에 놓치기 쉽지만, 수식어가 품사에 따라 핵어 앞에 오기도, 뒤에 오기도 하는 언어가 많습니다. 따라서 데이터를 완전히 분석할 때까지는 규칙을 쓸 때 품사 조건을 적어주면 좋습니다. 이제 앞에서 발견한 2번 사실도 활용해 봅시다. nig 와 nig wan ‘wan 의 nig‘는 나머지 단어나 어구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앞서 한국어 번역을 대강 분류했을 때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은 ‘(한) 알’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할 것입니다. ‘(한) 알’과 그나마 가장 밀접한 의미는 ‘눈알’이고, 한국어만 봐도 ‘눈의 알’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nig 는 ‘(한) 알’, nig wan 은 ‘눈알’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함께, ‘신체 부위’로 분류했던 ‘눈알’과 ‘발바닥’은 서로 관련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의미는 ‘지붕(집의 A)’, ‘방바닥(집의 B)’, ‘발바닥’ 그리고 ‘의복’ 범주에 속하는 ‘옷’과 ‘모자’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단일 단어(gin)로 표현 가능한 의미는 하나입니다. 어떤 의미가 보편적이고 단순하고 해당 문화에서 익숙한 것일수록 단일어로, 특수하고 복잡하고 외부에서 유입된 것일수록 합성어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신체 부위인 ‘발바닥’이나 특수한 의복인 ‘모자’보다는 인류보편적 문화 요소인 ‘옷’이 단일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옷’이 gin 이라면 같은 의복인 ‘모자’가 gin wic 이 됩니다.
‘지붕’과 ‘방바닥’ 중에서는 ‘지붕’이 ‘모자’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둘의 공통적 요소(A)는 ‘윗부분’ 혹은 ‘머리’ 정도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방바닥’이 dye ot 이고, ‘발바닥’이 ‘dye tyen‘이므로 짝은 일단 모두 찾았습니다. 한국어 의미만 봐도 공통적 요소(B)는 ‘바닥’ 내지는 ‘밑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dye 는 ‘바닥’, tyen 은 ‘발’이라는 뜻이겠고, ot cem ‘음식점’은 ‘음식/식사의 집’ 정도로 풀이됩니다. cem 은 ‘식사’가 됩니다. 소문항 (b)까지 해결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풀이가 한 방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적어도 두세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발견한 사실 하나에서 출발하여 여러 가지 가정을 세우고 기각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며 해결하는 방식보다는, 의미 간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확실한 지점들에서부터 기반을 쌓아나가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할 수 있습니다.
규칙 정리하기
어순 규칙 외에 따로 정리할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다른 문제에서는 같은 단어의 형태가 변화한다든가, 두 단어를 합쳐 합성어를 만들 때 일어나는 형태·음운 현상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잦으니 풀이 초반부에 그런 규칙들을 최대한 파악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의미 조합법 자체를 규칙화하라는 요구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 추가 점수를 받지도 못합니다.
번역하기
각 단어 및 어구와 그 한국어 번역을 짝 맞춰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안의 직역은 답안 작성시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작성을 권장합니다.)
- dyè ɔ̀t 방바닥 (집의 바닥)
- dyè tyɛ̀n 발바닥 (발의 바닥)
- gìn 옷
- gìn wìc 모자 (머리의 옷)
- ɲíg (한) 알
- ɲíg wàŋ 눈알 (눈의 알)
- ɔ̀t cɛ̀m 음식점 (식사의 집)
- wìc ɔ̀t 지붕 (집의 머리)
풀이 과정에서는 간략화한 철자를 사용했지만, 답안을 작성할 때는 반드시 원래 철자를 확인하고 그대로 적어야 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소문항 (b) 에 대한 답도 앞에서 구했습니다.
- dyè 집
- cɛ̀m 식사
(c) 는 ‘창문’을 랑고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창문’은 C ɔ̀t ‘집의 C’와 같이 표현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C 에는 ‘발’, ‘옷’, ‘(한) 알’, ‘눈’, ‘식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답이 무엇인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 wàŋ ɔ̀t 창문 (집의 눈)
작성 양재영 감수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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